오프닝 2025년 8월 9일 오후 6시  2025년 8월 9일 - 9월 20일 

무지개 고리:
스펙트럼적 사유를 향하여

디에고 벤케  앨런 가드너  룡 슈 & 사라 우 
김솔이  닉 클라인   마코토 오시로  우롱라디오 
OPENING AUGUST 9 2025 6:00 PM  AUG 9 – SEPT 20, 2025

RAINBOW LOOP:
TOWARD A SPECTRAL METHOD

DIEGO BEHNCKE  ALLAN GARDNER  JUNG HSU & SARA WU
SOLLEE KIM  NICK KLEIN  MAKOTO OSHIRO  OOLONGRADIO

무지개 고리: 
스펙트럼적 사유를 향하여


《무지개 고리: 스펙트럼적 사유를 향하여》는 2024년 5월, 작가 김형중이 룡 슈(Jung Hsu)와 닉 클라인(Nick Klein)에게 예술적 실천의 하나로서 전시 큐레이션을 활용하는 기획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기획의 초기 단계부터 작가이자 연구자인 룡 수, 그리고 기획자이자 실험음악가인 닉 클라인은 탈경계의 관점을 매우 강조했고, 이는 장르나 예술 작품을 규정하는 경계뿐만 아니라 큐레이터에게 관습적으로 주어진 행정적 역할의 경계에도 해당했다. 역사가로서의 예술가, 민족지학자로서의 예술가, 큐레이터로서의 예술가 등, 현대미술에서는 예술가가 관습적으로 규정되는 '예술 창작' 이외에 다양한 역할을 겸해 온 역사가 존재한다. 이를 바탕으로, 《무지개 고리》의 기획 배경에는 각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을 가리키는 '다원 예술'(interdisciplinary art)을 실험적으로 재구성하여 이를 더욱 넓은 차원에서 실현하려는 시도가 자리하고 있다.



본 기획이 전시라는 형태를 갖추기에 앞서, 제도권 예술계와 언더그라운드 예술계의 사례를 아우르는 다양한 제안이 있었다. 과거의 블랙 마운틴 칼리지, 캘아츠, 바우하우스 등을 모델로 한 예술학교를 조성해 보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아스 일렉트로니카와 같은 기술 미디어 중심의 예술제나, 일시적이고 쉽사리 규정하기 어려운 예술 실천이 가능한—작가 중심으로 운영되는—전시 공간 사례를 참조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참여 작가들이 '백지상태'에서 시작해 작업을 구상하고 불필요한 외부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작을 개진할 수 있는 예술레지던시를 운영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에는 전시 기획의 형태를 띠게 되었지만, 분업을 넘어선 협업 그리고 탈경계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무지개 고리: 스펙트럼적 사유를 향하여》는 전시 기획이라는 기존의 관념에 긍정적인 교란을 일으킴으로써 예술 경험의 의미를 되묻고자 한다. 참여 작가 중, 김솔이와 디에고 벤케(Diego Behncke)는 모두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지만, 벤케의 작품이 유령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사회적 그리고 공간적 이인화離人化를 탐구한다면, 김솔이는 자신이 달팽이관이라는 신체 기관과 맺고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한 개인 서사에 기반한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의 몰입・이입을 유도하기 위해 조각과 소리의 형식을 섬세하게 병치한다. 한편, 앨런 가드너(Allan Gardner)와 우롱라디오(oolongradio)는 문화사를 발굴하여 그로부터 '미래사'를 제시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가드너가 미니멀리즘 예술과 스코틀랜드의 민속 문화를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엮어내는 한편, 우롱라디오는 라디오 방송국이라는 지리적, 건축적, 그리고 기술문화적 측면을 재해석하여 베를린과 대전 사이에서 흐르는 주파수에 개입하는 시간성의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팀으로 참여하는 룡 슈와 사라 우(Sara Wu)는 인체 크기의 인터랙티브 설치물을 통해 비행 충동, 건축, 그리고 공간 지각에 관한 주제를 다루며, 여기에 등장하는 보호소와 '비장소'에 깃든 유희적 그리고 재난적 관계성은 인간과 조류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닉 클라인은 차이와 반복이라는 모티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모터가 장착된 심벌 등을 통해, 마치 움직이는 스노 글로브를 연상하듯 고요하게 공전하는 조형물을 선보인다. 마코토 오시로는 조율된 종과 타종을 위한 금속봉을 설치하여 전시 공간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데, 여기서 종이 울리는 빈도와 타이밍은 연결된 소형 태양광패널의 일광량 축적 주기에 의해 결정된다.





본 기획의 목적은 예술 작품과 장르의 경계, 그리고 관습적인 전시 형식을 탈피하여, 유기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적 실천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흥성과 과정 중심적 창작의 중요성을 기조로 하여, 《무지개 고리》는 해석의 폭을 제한하지 않는 개방성과 역동성을 모색하고, 지속적인 예술적 실천과 참여・교류를 통한 다양한 형태의 변주가 가능한 공간을 조성하고자 한다.



시장의 요구와 주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제도권 전시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무지개 고리》는 창작자 중심의 실험주의를 장려하고 틀에 매이지 않은 표현 양식이 가능한 토양을 조성하고자 한다. 또한, 창작자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상호 교류와 변화에 열린 태도를 바탕으로 단순한 '분업'을 넘어선 협업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아트사이트 소제는 전시 공간이자 비판적인 담론의 장, 예술적 과정과 생성의 장으로 변모할 것이다.



다양한 매체의 활용, 건축적 개입, 장소와 조각 그리고 소리의 재목적화가 이루어지는 이 공간의 모든 요소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한한 '무지개 고리'를 구성한다. 다양한 과정 중심적 창작 실천이 서로 엮일 때, 이 공간에는 하나의 완결된, '닫힌' 전시가 아닌 관객도 한 축을 이루는 활발한 대화와 교류의 장이 형성될 것이다. 《무지개 고리》의 새로운 창조를 위한 교란이라는 다소 거창한 기치는 사실 지금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공간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오늘날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창작자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조건으로 점점 내몰리고 있다. 그러한 상황일수록 순응적인, 혹은 반동적인 회로에서 벗어나, 각자가 처한 조건을 실천 속에서 반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지개 고리》가 그러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전시장이라는 규정을 넘어 다양한 종류의 관계 맺기와 경계 넘나들기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5년 닉 클라인